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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포그래피 이야기

글자꼴 저작권

지난 글에 사회 문화적 관점에서 본 좋은 한글 폰트를 이야기하며 잠시 글자체 도용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디지털 활자 시대로 넘어오면서 모방과 복제가 더 쉬워진 탓에 글자체의 도용과 유사성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특히 저작물로써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글자체는 여전히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나라 글자체 저작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988년 3월 12일 문화공보부 장관은 ‘구 고딕 도안서체 1012자’에 대해 글자꼴 저작등록증(등록번호 : 880010호)을 교부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글자체를 저작권법상 보호 저작물에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1993년 7월 안상수, 석금호, 윤영기, 한재준은 저작권등록관청인 문화체육부에 각자 디자인한 (안상수체 모음, 산돌체 모음, 윤체B, 공한체 및 한체 모음) 글자꼴의 저작권 등록 신청을 했습니다. 그러나 문화체육부가 ‘대한민국 저작권법상 글자꼴은 저작권의 대상이 아니다.’라며 저작권 등록 심사를 거부했습니다. 그 후 4명은 문화체육부가 저작권등록관청으로 저작물을 판단하는 기관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등록 신청 자체를 거부한 것에 대해서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에 저작권등록 반려처분 취소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저작권등록관청(문화체육부)이 작품의 독창성 정도와 보호 범위 및 저작권 귀속 관계 등 실체적 권리관계까지 심사할 권한은 없으나, 신청된 작품이 저작권법상 등록대상인지 아닌지 형식적 요건을 심사할 권한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저작권을 등록하려는 대상이 저작권법의 해석상 명백히 저작물에 해당하지 않을 때는 등록을 거부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문화체육부의 저작권등록 반려처분은 정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이러한 대법원의 판결은 글자꼴과 같이 실용적인 기능을 목적으로 창작한 응용미술 작품은 미적인 요소를 포함하더라도 저작물로서 보호할 수 없다고 보고, 응용미술 저작물의 범위를 제한한 것입니다. 이 판결은 대한민국 정부와 사법부가 예술을 단순히 감상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디자인은 겉모습을 예쁘게 꾸미는 행위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 판례로 인해 한글 글자꼴이 저작권법으로 보호받을 길은 원천적으로 막혀버렸습니다. 이후 저작권법으로 글자꼴을 보호하려면 법 자체를 개정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2003년 특허청이 한글 글자꼴에 대한 권리를 보호하려고 하자, 이에 앞서서 문화관광부는 글자꼴을 저작권법으로 보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언론에 밝혔습니다. 그 뒤 특허청은 2005년 7월 1일부터 디자인보호법을 시행했고, 아무런 움직임이 없던 문화체육관광부는 2009년 7월 23일이 되어서야 저작권법과 컴퓨터프로그램 보호법을 통합하면서 폰트를 저작물로써 보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작권법으로 글자꼴을 보호할 수 있다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폰트와 글자꼴의 개념을 구분하지 못(안)한 결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글자꼴을 복제해도 코드(프로그램)는 다르게 설계할 수 있는데, 현재 저작권법은 글자꼴의 유사성이 아닌 코드(프로그램)를 기준으로 복제 여부를 판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여전히 글자꼴은 창작물로서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덧붙여 디자인보호법으로 글자꼴을 보호받으려면, 이전에 없었던 글자꼴이라는 ‘신규성’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과연 이를 어떤 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이 심사해야 할까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법이 제대로 집행되기 위해서는 전문가 집단 차원에서 글자꼴의 유사성 판단 기준이 서 있어야 하는데 아직 우리에게는 그런 공통된 인식(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작권법이든 디자인보호법이든 언젠가 글자꼴을 보호할 날이 오겠죠. 노력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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