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한글 폰트 ➊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줄곧 한글을 그렸다 보니, 졸업하면서부터 가끔 사람들은 저에게 ‘좋은 폰트가 뭐냐?’고 묻곤 했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은 지 20년이 넘었네요. 처음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망설였습니다. 그러면 잠시 머뭇거리며 ‘이 사람은 무엇이 궁금해 질문했을까?’, ‘이 사람의 미적 감수성은 어느 정도일까?’ 등을 생각했습니다. 질문하는 사람이 무슨 일을 하는지 디자인 경험이 있는지 등을 안다면 나의 의견을 말하기 쉬워지지만, 상대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상투적인 대답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사람들과 어떤 문제에 관해 이야기 할 때,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과 어떤 문제의식을 공유하는지 또는 고민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오가는 대화의 내용과 깊이가 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한글에 대한 생각은 각자 경험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특히 시각영역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들의 한글에 대한 생각은 관람만 하는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는 한글과 다른 듯합니다. 스스로 한글을 이용해서 창작해야 하므로 문자로서든 이미지로서든, 한글의 기능성과 조형성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할 것입니다.
더욱이 저처럼 한글을 디자인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새로운 한글 글자꼴을 보면 나도 모르게 그 글자꼴의 개성이 무엇인지 살피게 되고, 그 개성이 고유한 것인지 생각하게 되며, 조형적 완성도 등에 대해 분석하게 됩니다. 이렇게 오래전에 사용했던 글자꼴부터 최근에 만들어진 글자꼴까지 살펴보면서, ‘좋은 폰트’에 대한 기준을 찾으려고 고민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좋은 폰트에 대한 저의 기준이 생겼습니다. 물론 제가 정한 기준에 의한 판단이죠.
이를 위해서 미리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바로 ‘좋다’입니다. ‘좋다’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듯합니다. 내 마음에 들거나 기분이 좋을 때. 우리는 ‘좋다’고 합니다. 아, 맑고 파란 하늘을 보면서도 ‘좋다’고 말합니다. 한편 크고 깨끗해서 먹음직스러운 배와 마르고 검어서 상한 듯한 배가 있다면 우리는 망설임 없이 크고 깨끗한 배를 좋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렇게 ‘좋다’는 말을 씁니다. 하지만 두 사례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좋다’를 쓴 것입니다. 앞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싫다’의 반대 뜻으로 쓴 ‘좋다’고, 뒤는 상태나 조건이 부족하다는 ‘나쁘다’의 반대 뜻으로 ‘좋다’를 쓴 것입니다.
한글 폰트에서 ‘좋은’ 폰트에 대한 의견도 비슷합니다. 내 취향에 맞아서 좋다고 말한 폰트가 있는가 하면, 어떤 상황에 쓰기에 적합하여서 좋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는 뜻입니다. 곧 좋은 폰트는 특정한 것이 정해진 것이라기보다, 상황이나 조건에 적합한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곧 좋은 폰트를 고르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알고 그에 합당한 것을 골라야 합니다. 물론 요즘은 공짜폰트를 ‘좋다’고 말하는 것을 자주 듣곤 합니다. 이때 ‘좋다’는 한글 글자체의 조형이 좋아서라기보다 돈을 내지 않아도 돼서 좋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은 ‘좋은’ 폰트가 무엇인지 논의할 때 상당히 방해가 되곤 합니다.
오늘 글을 맺겠습니다. 저는 좋은 폰트에 관해 이야기할 때 무슨 무슨 폰트가 좋은 폰트라고 폰트 이름을 나열하기보다, 좋은 폰트의 기준을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몇 회에 걸쳐서 제가 생각하는 좋은 폰트에 대한 기준을 말씀드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