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한글 폰트 ➋’에서 언급했던 ‘한글 폰트에는 많은 구성 요소가 있다’는 이야기 기억하시나요? 그 중 세 번째로 이야기한 것이 읽기 편안함과 보기 좋음입니다. 저는 좋다는 것을 ‘조화’의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글과 다른 문자 그리고 기호 등이 함께 쓰였을 때 일관된 조형 질서를 유지해야 같은 ‘생김새’라는 폰트의 기본 조건을 갖추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한글과 다른 문자가 조화롭지 못할 때 가독성을 해치는 것은 물론이고 본문의 아름다움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한글과 다른 문자의 조화는 크게 형태와 크기로 구분해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 이야기 안에는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중에서 오늘은 형태에 관해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글자체의 조화는 다시 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비교적 단순한 표현의 조화로서 글자 줄기에 겉으로 드러나는 특징에 관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한글 명조체 획에 있는 부리와 꺾임 등은 필기구로 인해서 발생한 요소들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알파벳 가라몬드체 획에도 필기구로 인해서 생긴 세리프가 있습니다. 이 두 글자체의 부리와 세리프는 모두 필기구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긴 것이므로 서로 잘 어울릴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그러나 부리와 세리프에는 한 가지 놓쳐서는 안 될 차이점이 있습니다. 먼저 도구입니다. 원형의 붓으로 표현된 부리와 넙적한 붓 또는 펜으로 표현된 세리프는 생김새가 다릅니다. 그 다음은 한글 명조체의 부리와 꺾임 등이 글자 높이와 비교해 차지하는 비율(크기)이 가라몬드체에서 세리프가 차지하는 비율보다 작다는 것입니다. 명조체와 조화로운 가라몬드체가 되려면 세리프 크기를 작게 해야 합니다.


글자모양의 조화에서 또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은 문자의 특성에 따른 구조적인 조화입니다. 네모틀 한글은 글자의 무게중심이 가운데 또는 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알파벳은 베이스라인(baseline)과 엑스–하이트 선(x–height line)에 의해 생긴 바디(body)가 무게의 중심 역할을 하는데, 가운데 보다 약간 아래에 있습니다. 그래서 무게중심이 전혀 다른 이 두 문자를 나란히 사용하면 어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또 글자의 모양을 결정짓는 데 크게 영향을 주는 부분이 글자의 속공간입니다. 그러나 한글의 속공간과 라틴글자의 속공간은 완전히 다릅니다. 네모틀 한글의 속공간은 상하좌우로 모아 쓴 낱자와 그 사이에 형성된 공간이 네모틀 안 전체에 작게 퍼져있지만, 알파벳 소문자의 속공간은 가로로 비교적 가지런하게 나타납니다. 심지어 대문자의 속공간은 큰 원과 좁고 긴 공간 등으로 이루어져 한글 속공간과는 모양이나 크기가 상당히 다릅니다. 이처럼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여러 문자를 함께 어우러지게 만들기란 근원적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다음 글에는 한글과 다른 문자를 조화롭게 사용하기 위해 고민해야 할 것 중 크기의 조화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