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우혁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같이 대학을 다니고 한글꼴연구회 소모임도 2년 동안 함께했습니다. 박우혁은 남다른 감수성을 가진 친구라서 그리는 글자마다 너무 재밌는 형태였습니다. 글자체 이름도 남달랐고요. [이오십빵]체 [별지랄]체….
같이 활동하면서 늘 그의 재치 있는 형태와 이름짓기가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나도 해봐야지 따라 했죠. 하지만 결과는 엉망진창이었습니다.
[별]과 [꽃]
[별]은 대학교 3학년 때 박우혁의 [별지랄]체처럼 별을 소재로 글자를 그린 것입니다. (나중에 이 글이 책으로 나올 때, 박우혁 디자이너에게 이미지 사용을 요청해보겠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 별자리에 관심을 가지는 시기가 있는 것 같지만, ‘별’로 글자를 그릴 줄이야. 나름 생각나는 것을 소재로 또는 주제로 다양한 글자체를 그려봤었지만, 저는 생각지도 못한 소재였습니다.
좀 창피하지만, 그래서 저도 박우혁을 따라 별로 글자를 그려봤습니다. 크고 작은 별들로 [ㄱ, ㄴ, ㄷ…, ㅏ, ㅑ, ㅓ…]를 그렸는데, 역시나 제가 그린 별 글자체는 재미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줬을 때 반응도 ’별’이라는 소재에 대한 호감은 있지만, 재밌어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뒤에, 다시 한번 시도한 것이 [꽃]입니다. 사람들에게 ‘별’만큼 호감을 주는 소재가 ‘꽃’이라고 생각해서 글자에 꽃을 그려 넣으면 예쁘지 않을까 상상했던 것입니다. 세벌식으로 글자를 그리고 글자에 꽃을 그려 넣었지만, 이 역시 예쁘지 않았습니다.


제가 그린 [별]과 [꽃]이 왜 예쁘지 않고 재밌지도 않은지 이유를 생각했습니다. 우선 ‘별’과 ‘꽃’을 글자에 담으려는 생각만 해서, 글자가 갖춰야 할 기본적인 균형과 비례는 엉망이었다는 것. 그리고 제가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것. 글자에서 의미를 제거하고 순수하게 형태를 다뤘어야 했지만, 아무리 예쁘고 재밌는 소재를 이용해도 글자는 글자로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심했습니다. 그래서 시각적 유희나 재미를 표현해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쁜 별로 글자를 그리면, 밤하늘에 나타나는 예쁜 별자리가 보여야 했는데, 그저 별을 줄줄이 나열해서 글자 형태를 갖추려고만 했습니다. 게다가 얼마만한 크기에서 봤을 때 예쁠지 생각하지 못했으니, 별은 별이 아닌, 그냥 까맣고 지저분한 점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예쁜 꽃으로 글자를 그리면 흐드러지게 핀 꽃밭이 나타나야 하는데, 글자 사이사이에 억지로 꽃을 끼워 놓기만 한 했다 보니, 글자체로서의 아름다움이나 꽃의 아름다움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글자와 꽃이 어색하게 뒤섞인 상태가 돼버렸던 것입니다.
이 작업을 했던 때가 3학년 여름방학이었고, 저에게는 많은 일들이 벌어졌던 때였습니다.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시작한 시기이면서, 창작자로서의 열등감으로 우울증을 앓기 시작한 때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이제 우울증을 많이 극복해서, 그 시절을 조금은 담담하게 돌아 볼 수 있습니다.
타임머신이 있다면, 51살 이용제가 27살 이용제에게 가서 말해주고 싶습니다.
네가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더 잘 들여다보라고,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괴로워하지 말라고.
* 박우혁… 아주 가끔 연락하지만, 늘 마음속에 있는 친구이자 동료. 잘하는 방법을 깨닫게 해준 고마운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