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인자체의 미학적 의미-세종의 마음이 반영된 갑인자, 갑인자체의 가치 ②
필자는 갑인자체를 진체 계열로 바꾼 이유가 여럿 있겠으나, 가장 근본은 모범으로 삼을 글자체를 널리 알리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이유를 덧붙인다면, 세종의 성정이 반영된 것으로 생각한다. 사람은 본디부터 가진 성질이 있다. 이를 본성이라 하며, 본성을 숨길 수 없다고 말한다. 창작도 비슷하다. 20년 정도 한글 디자인을 가르치면서 느낀 점은, 각자 자신을 닮은 모습으로 글자를 그린다는 것이다. 각 개인의 성정이 반영된 것이고, 취향이 반영된 것이다. 창작자가 아니라도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을 떠올려 봐도 좋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날렵하고 예리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 차갑고 세련된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둥글둥글 귀엽거나, 포근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자신이 사회에 많은 영향을 주는 위치에 있다면, 자신의 취향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신중해야 한다.
세종의 성정은 훈민정음 창제와 삼강행실도를 간행한 사실 만으로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성정에 힘이 넘치는 강건한 글자체가 어울릴까? 아니면 온후하고 우아한 글자체가 어울릴까? 이는 유행을 넘어 활자 제작을 주도한 사람의 뜻과 성정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나아가, 세종이 송설체보다 진체를 더 선호했다는 의미는, 송설체의 근원이 된 진체의 의미를 중하게 여긴 것이겠다.
갑인자가 우리 인쇄 문화에 지대한 기여를 한 것은 그동안 많은 연구자가 이야기했다. 필자는 갑인자에서 글자의 형태인 갑인자체의 가치를 덧붙이고자 한다.
한글이 우리 일상에서 자리 잡은 뒤에 한자는 점점 일상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문화의 관점으로 본다면, 우리는 한자를 버릴 수 없을 것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전부터 그리고 훈민정음을 쓰면서도, 우리는 한자를 사용했고 뛰어난 문화를 형성했다. 필자가 한글 디자이너이지만, 한자를 포함한 여러 문자가 한글과 공존했을 때, 진정 건강한 문화를 이룰 수 있고, 한글이 더 빛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한자 문화까지 포용할 수 있다면, 그리고 우리의 고유한 한자 활자체를 개발한다면, 어떤 글자본을 모범으로 삼아야 할까? 요즘 널리 쓰는 한자 명조체일까? 아니면 디지털 환경에서 유용한 고딕체일까? 필자는 갑인자체가 우리 한자 문화의 모범으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갑인자체를 밑바탕에 놓고, 현대의 사회 문화 기술 환경에 맞춰 새로 개량도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현대 사회에서 ‘개성’을 중요하게 여기면서, ‘모범’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 듯하다. 필자는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마르지 않는다’는 말을, 창작자로서 잊어서는 안 되는 말로 여긴다. 뿌리 깊고, 샘이 깊은 물은 우리 문화 안에 있었던 ‘모범’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 개성도 더 빛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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