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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포그래피 이야기

나의 세로쓰기, 시작!

한글 문장 방향이 하루아침에 세로에서 가로로 바뀌면서, 한글 활자도 덩달아 큰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70년 정도 가로쓰기에 적합한 활자를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1980년 즈음부터 학문적으로 ‘가로쓰기’에 알맞은 활자를 만들고자 했던 안상수, 한재준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았고, 그 뒤를 따랐습니다. 두 분 선생님과 저 그리고 뜻을 함께했던 몇몇 분들이 1999년 1월 한글디자인연구소를 열었고, 가로쓰기 전용 활자를 연구하고 작업했습니다. 5년 동안 4~5개의 크고 작은 연구와 활자 디자인을 했었고, 돌아보면 성과가 있었다고 스스로 평가해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시기에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많습니다. 하루하루 저의 부족함을 가장 크게 느꼈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극복하고 싶은 마음에 2004년 세로쓰기용 활자 디자인을 시도했습니다.
아랫글은 《한글+한글디자인+디자이너》(세미콜론, 2009)에 썼던, “‘꽃길’을 놓다”의 일부입니다.



‘꽃길’은 2004년 글꼴 창작 후원금을 받아 디자인한 세로쓰기용 글자꼴입니다. 만약 이 기금이 없었다면 ‘꽃길’은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요. 사람들은 “모두 가로쓰기를 하는데 왜 세로쓰기를 위한 글자꼴을 만들었나요?”하고 물었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창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욕심이 나듯, 저 또한 지금까지 만들어진 것과 다른 것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둘째는 세로쓰기 전용 글자꼴을 만들어보면 가로쓰기에 적합한 글자꼴에 대해서 좀 더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가로쓰기에 적합한 글자꼴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여러 시도를 해보았지만 늘 부족함을 느꼈고 ‘과연 내가 알고 있는 것이 맞을까?’ 하는 의심이 있었습니다. 가로쓰기에 적합한 요인들을 세로쓰기용 글자꼴에 하나씩 적용해보면, 정말 중요한 원칙과 요소인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셋째는 ‘좋은 글자꼴’의 기준에 맞는 디자인을 시도해볼 수 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본문용 글자꼴은 사실 옛날 세로쓰기를 할 때 쓰인 글자꼴이 원형으로, 가로쓰기 환경에 맞춰 조금씩 바꾼 것이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는 좋은 폰트의 조건에 맞지 않았습니다. 좋은 폰트란 상황과 조건 등에 따라 달라지니 세로쓰기 환경과 쓰임에 적합한 글자꼴로 상황과 조건을 제한하여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과거에 중국, 일본과 같이 전통적으로 세로쓰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중국과 일본에는 세로쓰기 문화가 남아 있지만, 우리는 그 문화를 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의 인쇄·출판문화에는 세로쓰기가 전혀 없었던 양, 빠르게 시각 문화에서 사라진 것입니다. 세로쓰기 방식이 과거의 안일한 답습이 아니라면 전통을 살려 다양한 문화를 고루 누리면서 사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말본》최현배(1937)
세로쓰기용 글자꼴을 디자인하기로 마음먹고 그 쓰임을 생각해보니 적합한 곳으로 거리의 간판이나 인쇄·출판물이 우선 떠올랐습니다. 그런데 간판은 가게의 특징과 환경 등 여러 조건에 따라 글자꼴을 포함한 디자인이 달라지기 때문에 어떤 모양의 글자꼴이라도 활용도가 낮을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면 인쇄·출판물의 본문에 사용하는 쪽으로 만들어보자고 결정하여 돋움체보다는 바탕체의 특징을 담고, 10~14포인트 크기에서 편하게 보일 수 있는 글자꼴을 계획했습니다.
2006년 발표했던 때 '꽃길' 모습. 지금 보면 참 부끄럽습니다.



어떠신가요. 10여 년 전에 비하면 지금은 세로쓰기용 활자가 조금 더 많이 보이지만, 당시 해보겠다고 마음을 정했을 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무엇부터 해야 할지 제 심정은 그저 ‘막막’이었습니다. 다음 글은 ‘꽃길’을 그리면서 겪었던 시행착오를 이야기하겠습니다.




‘한글 타이포그래피 읽기’ 구독 사이트 개설을 위한 후원 프로젝트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일요일 보내드리는 글은 제가 그동안 썼던 글을 다시 정리한 글입니다. 글 순서는 제가 겪었던 일에서 ‘중요했던’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했습니다. 제가 겪은 일의 시간 순서가 아닙니다. 혹시 혼란스러워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 (덧붙여, 웃자고 해보는 심리테스트에서 저는 ×쫄보가 나왔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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